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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성형 대국(2) - 외모지상주의 문화는 한국의 역사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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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광, 사업 등의 목적으로 가장 왕래가 많은 민족인 일본인이 한국 사회를 바라 본 시선의 글입니다(2020년 4월). 우리를 바라보는 외국인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그 단면을 이해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앞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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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왜 성형대국인지 그 답은 한국의 역사에 있습니다. 또한 아시아인의 얼굴 콤플렉스와 서양인의 이상주의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인이라고 해도 일본인과 한국인은 그 근저에 있는 것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외모의 아름다움은 행복하기 위한 무기라는 생각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일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똑똑한 여성은 몸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상당히 직접적입니다. 성형으로 좋은 일, 좋은 반려자를 얻게 되는 사회가 현실로 한국에 있으니까요. 한국은 재벌 지배로, 그것도 4대 재벌은 모두 가족 기업으로 창업자 일족이 소유하고 경영하고 있습니다. 마치 전쟁 전의 일본과 같습니다.

 

한국의 성형수술 유행 문화(1) - 외모지상주의 화장품 미용 문화

 

한국의 성형수술 유행 문화(1) - 외모지상주의 화장품 미용 문화

이 글은 2019년 12월 일본 인터넷 잡지에 게재되었던 "한국에서는 성형이 왜 보통인가요? 한국의 외모지상주의와 미용문화"에 대한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우리 사회, 특히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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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신 기업에 참가하는 것이 행복의 첫걸음이고 그것을 위한 미용성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겠지만 일본인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는 역사에 답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역사는 강대국으로부터 농락 당하고 속국으로 살아온 역사가 있습니다. 나라가 아니라, 중국 왕조가 우두머리로 1000년 이상 존재했으니까요.



여기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한국 공녀의 역사입니다. 고대 한반도는 군웅이 할거했지만 589년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이 시기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대가 진행되면서 신라, 고구려, 백제는 당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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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훨씬 옛부터 공격받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고려 근처를 알기 쉽습니다." "현재 민족의식 확립은 13세기경으로 보이며, 몽골의 지배를 받은 13세기에 이르러 삼국사기의 편찬과 민족계발과 통합이 활발해졌습니다. 13세기 후반에 현재 민족으로서의 자기 독자성 숙성과 유전자적 일치가 거의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일본 위키백과

 

 

공녀란 일반적으로 여성을 조공품의 하나로 바치는 것입니다. 5세기에 고구려 신라에서 중국 북위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한반도에서 공녀를 올리는 일이 가장 성행했던 것은 고려 후기부터 이씨 조선 시대까지입니다. 기록에 남아있는 것은요. 결혼도감을 두어 140명의 공녀를 두었습니다.

 

 

공녀확보 때문에 온 나라의 혼인이 금지되었습니다. 과부처녀추고별감이라는 관청을 두어 조직적으로 대응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이것들은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사실입니다.

 



결혼도감은 공녀를 선별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 결혼도감으로, 결혼도감이 뽑은 여자들은 겨우 비단 12필(비단위로 1필=약 9.4m)의 화장비를 받고 원래대로 팔려 나갔다고 합니다. 고려왕조는 살아남기 위해 가혹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제25대 충렬왕은 나라의 무단 혼인을 금했습니다 .좋은 집안의 딸들은 먼저 벼슬아치에게 보고하고 시집보내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이후에도 이런 금혼령을 때때로 내려 처녀성을 확보하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쓰면 여성의 지위가 낮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교의 이씨 조선과 비교하면 꽤 높았습니다. 남편과 사별하면 언제든지 재혼이 가능하고 유산을 상속받을 때도 아들과 딸의 구별이 없어 부모 장례 비용도 공동으로 부담했을 정도에서입니다. 또한 남편에게 맞은 아내가 관헌에 고발하여 체포된 남편이 채찍질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일본 위키백과).

 

김건희 김혜경 나이 출신학교 의혹 재산?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후보 비교

 

김건희 김혜경 나이 출신학교 의혹 재산?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후보 비교 -일본의 한국 전문기

이 내용은 차기 대통령 후보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 3월 4일 일본의 한국전문기자가 분석 보도한 김건희 김혜경?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후보 비교 내용입니다.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후보? 김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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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백성들도 기꺼이 원나라에 '공녀(公女)'를 보낸 것은 아닙니다. 공녀는 주로 13세에서 16세까지의 딸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금혼령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혼인을 하도록 하기 위해 10세가 되면 혼인을 서두르는 조혼 풍습이 생겨났습니다. 또 머리를 자르고 승려가 되거나 절박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이렇게 딸을 잡혀가는 것에 대해 저항하고 있었으니까요.



기황후(奇皇后). 고려시대 공녀로 기황후가 있습니다. 드라마 기황후입니다. 고려공녀로 원정에 헌상된 여인입니다. 밥상머리에 시중까지 들다가 순제의 총애를 점차 얻고 있었습니다. 역모사건으로 순제의 황후는 시해되고 바얀 구특이 새로 황후로, 기씨는 차황후가 되었습니다.

 

 


정황후가 사망 함에 따라 차황후인 기씨는 정황후로 승격됩니다. 고려공녀가 황후가 되었던 것입니다. 원나라가 분열되어 기황후의 아들이 북원인 소종(昭宗)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기황후 일족이 고려에서 으스대게 되고 일족이 백성들을 착취하게 됩니다.

 

김건희 과거 사진 논쟁 - 한국의 성형 수술 문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과 반응

 

김건희 과거 사진 논쟁 - 한국의 성형 수술 문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과 반응

이 글은 2021년 12월 9일 한국의 차기 대통령 후보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과거 사진 논쟁 기사의 일본 포털 보도에 대한 일본쪽 반응입니다. 한국과 한국의 성형문화, 정치문화에 대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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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원의 뜻을 품고 고려왕으로 즉위한 공민왕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겨 1356년 기씨 일문을 주살했습니다. 이를 원망한 기후는 공민왕의 폐위를 순제에게 강요했고, 황태자에게도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라'고 불어넣었습니다(일본 위키백과)

 



원래는 다음 중국 왕조인 명나라에 멸망해 버렸고, 기황후는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기황후가 원하는 대로 북원의 결속은 약해져 원화가 망하는 것을 앞당겼다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씨조선입니다
고려 다음은 이씨 조선(李氏朝鮮)입니다. 이씨 조선은 무장 이성계가 역모를 일으켜 스스로 고려왕이 되었고 명나라 황제로부터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원래의 '공녀'요청은 없어졌지만 이번에는 명나라가 했습니다. 중국 본토 사신에 의해 사적으로 데려간 경우를 포함하면 한반도에서 바친 공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합니다. 조선 태종 8년에는 처녀 30명이 선발되었는데 중국 사신은 "아름다운 여자가 없다"며 벌하려 했고, 딸들도 지명을 피하기 위해 장애가 있는 것처럼 꾸며 태종은 "처녀를 숨긴 자, 침구를 한 자, 머리를 자르거나 약을 바른 자 등 선발을 면하려 한 자"를 벌하는 호령을 내렸습니다.




한국에서 영웅시되는 세종도 "국내의 이해뿐만 아니라 외국과도 관계되는 일이므로 오직 (중국 황제의) 영을 따를 뿐"이라며 세종 때 가장 공을 세운 여성의 수가 많았습니다. 중국에서 공녀를 선발하는 사신이 1~2개월 걸리는 공녀를 선발하는 기간은 반도 전역에 혼인금지령이 조선 왕으로부터 내려졌습니다. 13~25세의 미혼 여성이 선발 대상으로 딸을 둔 백성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일본위키백과).

 



일본은 다행히 과거 다른 나라에 점령당한 적도 없고, 중국에 대해서도 신분관계가 아닙니다.(형식상으로는 부하와 같은 외교를 하고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결국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기까지 1000년 이상 원, 명, 청에 대한 공녀는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녀의 역사가 오늘날 한국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강대국의 속국이 되어 험한 꼴을 당하고도 무릎을 꿇고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던 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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